취업도 소프트웨어도 망가졌다: AI가 채용 과정을 어떻게 적대적으로 만들었나 (한 해고 엔지니어의 기록)
원문 정보
- 제목: Jobs and Software is Fucked
- 출처: 익명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 On Games And Design (개인 블로그, urflow.bearblog.dev)
- 발행: 2026-06-19 · 약 3~4분 분량
- 원문 링크: https://urflow.bearblog.dev/jobs-and-software-is-fucked/
Articles 카테고리는 읽을 만한 외부 글을 골라 핵심을 정리하고 내 관점으로 분석하는 공간이다. 이 글은 통계나 프레임워크를 내세운 분석문이 아니라, 6개월째 일자리를 못 구한 한 베테랑 엔지니어가 쏟아낸 현장의 1인칭 기록이다. 그래서 더 솔직하고, AI가 채용 시장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데이터가 아니라 체감으로 보여 준다.
한 줄 요약 (TL;DR)
10년 차, Blizzard에서 7년 일하다 정리해고된 엔지니어가 본 지금의 채용 시장은 단순히 “힘든” 게 아니라 적대적이다. AI는 채용을 개선하기는커녕 그 안의 가장 나쁜 면들 — 무인 자동 스크리닝, 절박한 지원자들의 과잉 경쟁, 키워드 필터링된 이력서 심사 — 을 한꺼번에 증폭시켰다. 그럼에도 저자는 코드 품질과 보안을 포기해 가며 AI에 영합하는 것은 “엔지니어로서의 존엄을 버리는 일”이라며 거부한다.
왜 이 글을 골랐나
이 위키에는 “AI로 어떻게 더 잘 만들 것인가”를 다룬 글이 많다. 한 발 물러서 “AI가 노동시장을 어떻게 바꿨는가”를 데이터로 따진 AI는 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대체하지 못했나나 죽은 경제 이론 같은 글도 있다. 이 글은 그 데이터의 반대편, 즉 한 사람의 몸으로 통과한 시장의 질감을 채운다.
데이터는 “엔지니어 고용은 둔화됐을 뿐 무너지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 통계 안에는 final round까지 가서 떨어지고 리크루터에게 잠수당하는 개개인의 6개월이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은 그 6개월을 보여 준다. 거시 통계와 미시 체험을 나란히 놓고 읽으면, “AI가 일자리를 없앴다”는 단순한 명제 대신 “AI가 채용이라는 절차를 어떻게 적대적으로 만들었나” 라는 더 정확한 질문이 떠오른다. 그게 이 글을 고른 이유다.
이 글이 그리는 인과 사슬을 한눈에 보면 이렇다.
flowchart TB
A["AI가 채용 과정에 들어옴"] --> B["채용의 무인화·자동화"]
B --> C1["자동 스크리닝<br/>(이력서 1차 탈락)"]
B --> C2["키워드 필터<br/>(기계 가독성이 역량을 앞섬)"]
B --> C3["AI 프록터링<br/>(화면 잠금·감시)"]
C1 --> D["절박한 지원자들의<br/>과잉 경쟁"]
C2 --> D
C3 --> E["방향이 거꾸로 된 군비 경쟁<br/>(정직한 사람만 불리)"]
D --> F["숙련자도 빠져나오기 힘들고<br/>주니어의 사다리는 걷어차임"]
E --> F
F --> G["채용이 '적대적'으로 닫힘"]
G --> H["그럼에도 거부<br/>(엔지니어로서의 존엄을 지킴)"]
핵심 내용
원문은 짧은 1인칭 에세이다. 아래 정리는 모두 본문에 실제로 등장하는 내용이며, 사실과 저자의 감정 토로를 구분해 옮겼다.
저자가 선 자리
저자는 10년 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작은 외주 업체를 거쳐 Blizzard에서 7년을 일했고, 2025년 6월에 정리해고됐다. 글을 쓰는 시점은 실직 6개월째. 그는 지금의 시장을 “최근 기억 중 최악”이라고 부른다. 베테랑의 이력서를 들고도 빠져나오기 힘든 시장이라는 점이 글 전체의 전제다.
면접이라는 고문
저자가 먼저 토로하는 건 면접 경험이다. 좋은 신호를 받으며 최종 라운드까지 갔는데도 거듭 떨어지고, 떨어진 뒤에는 리크루터들이 그대로 침묵에 들어간다. 역량이 명백히 맞아떨어지는 자리였는데도 그렇다. 그는 응답 없는 리크루터들을 LinkedIn에서 하나씩 끊어 낸다고 적는다.
이 단락의 정서를 가장 잘 압축한 문장이 글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비유다. 지원할 때마다 마치 회사가 눈앞에 레고 블록을 흩뿌려 놓고는, 네 가치를 증명하려면 그 위에서 맨발로 춤춰 보라고 시키는 것 같다는 것. 능력을 보여 달라면서 정작 능력과 무관한 고통을 통과 의례로 요구하는 구조에 대한 냉소다.
자동 스크리닝의 모순
기술적으로 가장 날카로운 비판은 자동 코딩 테스트 플랫폼을 향한다. 저자는 Coderpad, HackerRank 같은 도구가 깔아 놓은 장벽을 이렇게 짚는다.
- 전체 화면 잠금(full-screen lockout) — 레퍼런스 문서를 띄워 볼 수 없게 막는다.
- AI 프록터링(AI proctoring) — 시험 중 응시자를 감시한다.
- 현업 개발자가 아닌 사람이 설계 — 실무 감각이 없는 사람들이 만든 절차라는 것.
그가 찌르는 핵심 모순은 이렇다. 회사들은 이런 도구를 부정행위를 막는 필터로 쓰지만, 그 모든 장치는 결국 “옆에서 휴대폰을 든 어떤 작자(some asshole on their phone)”가 지금의 AI 도구로 손쉽게 우회해 버린다는 것. 진지하게 정직하게 푸는 사람만 화면에 갇혀 불리해지고, 속이려는 사람은 오히려 자유롭다. 검열은 점점 빡빡해지는데 정작 막으려던 부정행위는 못 막는, 방향이 거꾸로 된 군비 경쟁이다.
AI가 증폭시킨 것들
저자는 AI가 상황을 개선하기는커녕 “최악의 면들을 모조리 증폭(supercharged)”시켰다고 본다. 두 가지가 겹친다.
하나는 경쟁의 과열이다. 절박한 지원자들이 AI로 무장하면서, 한 자리를 두고 사실상 이길 수 없는 경쟁이 벌어진다. 다른 하나는 이력서 심사의 무인화다. 이제 이력서는 키워드 매칭과 AI에 최적화된 표현으로 1차 걸러진다. 사람이 읽기 전에 기계가 먼저 떨어뜨리는 구조에서는, 실제 역량보다 “기계가 통과시키는 문장”을 쓰는 능력이 앞서게 된다.
사다리를 걷어차는 사람들
저자는 이 고통이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아티스트, QA 테스터, 작가, 그리고 주니어 개발자 모두가 같은 충격을 받고 있다. 특히 그는 회사들이 사다리를 완전히 걷어차고(pulling up the ladder completely) Anthropic이 주니어의 필요 자체를 없애 주기를 기대하는 분위기를 지적한다. 당장의 효율을 위해 다음 세대가 올라올 발판을 치워 버리는 선택이다.
그리고 마지막 거부. AI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곧 손해라는 압박 속에서도, 그는 코드 품질과 보안을 포기하면서까지 AI에 영합하는 것은 “엔지니어로서의 존엄(dignity as a software engineer)”을 내주는 일이라고 못 박는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 일이 내가 가진, 괴짜 컴퓨터 너드로서의 기쁨을 앗아 가게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럴 수 없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너무 지친다”는 문장으로 글을 닫는다. 분노가 아니라 피로로 끝나는 글이다.
분석과 인사이트
여기서부터는 원문 요약이 아니라 내 관점이다.
이 글의 가치는 “데이터의 빈칸”을 메우는 데 있다. AI는 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대체하지 못했나는 해고 공시·고용 통계·로그 데이터로 “엔지니어 고용은 무너지지 않았다”를 보여 줬다. 그 말은 맞다. 하지만 거시 통계가 평평해 보여도, 그 안에서 채용이라는 절차 자체의 품질은 급격히 나빠질 수 있다. 일자리 총량과 그 일자리에 닿는 경로의 고통은 별개의 문제다. 이 글은 후자, 즉 “취업 과정의 적대성”을 증언한다. 두 글을 같이 읽어야 시장의 그림이 입체가 된다.
자동 스크리닝의 모순은 보안 문제로 읽으면 더 분명해진다. 저자의 비판 — 정직한 사람만 화면에 갇히고 부정행위자는 자유롭다 — 은 전형적인 위협 모델의 실패다. 이 위키의 사기의 미래는 이미 와 있다가 다룬 구도와 똑같다. 방어자는 비용을 치르는데 공격자는 AI로 그 비용을 우회해 버린다. AI 프록터링은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을 회사에 팔지만, 실제로는 부정행위를 막지 못하면서 선량한 지원자에게만 마찰을 가중한다. 검증 비용을 엉뚱한 쪽에 부과하는 설계는 보안에서든 채용에서든 같은 방식으로 실패한다.
“이력서가 키워드로 1차 걸러진다”는 대목이 가장 실무적으로 중요하다. 기계가 사람보다 먼저 떨어뜨린다면, 게임의 1차전은 “역량”이 아니라 “기계 가독성”에서 벌어진다. 이건 부당하지만 현실이고, 노동시장이라는 게임에서 살아남기가 말한 “자신을 벤더로 포지셔닝하라”는 조언과 정확히 맞물린다. 좋은 제품도 유통 채널(여기서는 ATS와 AI 필터)을 통과하지 못하면 고객(채용 담당자) 앞에 서지조차 못한다.
다만 한쪽으로 기운 글이라는 점은 짚어 둬야 한다. 이건 분석이 아니라 토로다. 표본은 한 사람, 게다가 6개월간 거절을 누적한 사람의 시점이다. final round 거절이 반드시 “시스템의 부조리” 때문만은 아닐 수 있고, 자동 스크리닝이 모두 무용한 것도 아니다(대량 지원 환경에서 1차 필터는 회사 입장에선 합리적이다). 저자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글의 힘은 객관성이 아니라 솔직함에 있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시장의 진단”이 아니라 “시장이 한 숙련자에게 남긴 흉터의 기록”으로 읽는다.
가장 오래 남는 건 마지막의 거부다. 효율의 이름으로 코드 품질과 보안을 내주는 것이 곧 “존엄을 버리는 일”이라는 선언은, 이 위키가 그냥 그렇게 말하면 된다나 내 소프트웨어의 북극성에서 이어 온 주제 — 인간의 가치를 ‘AI보다 잘함’으로 증명하려 하지 말라 — 와 연결된다. 시장이 적대적일수록 자신이 무엇을 포기하지 않을지를 정해 두는 것이 오히려 방향타가 된다. 분노가 아니라 피로로 끝나는 결말이 더 현실적이라서, 더 오래 곱씹게 된다.
적용 포인트
- 거시 통계와 미시 체험을 함께 본다. “엔지니어 고용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통계가 맞아도, 채용 절차의 적대성은 별개로 나빠질 수 있다. 둘을 분리해서 판단하라.
- 이력서를 두 독자에게 쓴다. 기계(ATS·AI 필터)가 1차 독자, 사람이 2차 독자다. 직무 공고의 핵심 키워드를 정직하게 반영하되, 통과 후 사람이 읽을 서사도 함께 갖춰라.
- 자동 코딩 테스트는 도구로 연습한다. 화면 잠금·시간 제한·레퍼런스 차단 같은 제약 자체에 익숙해지는 것이 실력과 별개의 통과 변수다. 불공정하지만 게임의 규칙이다.
- 리크루터의 침묵을 자신의 결함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잠수는 시스템의 디폴트 동작에 가깝다. 거절을 자기 가치의 측정값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다음 시도로 빠르게 넘어가라.
- 포기하지 않을 선을 미리 정해 둔다. 시장 압박 속에서 무엇(코드 품질·보안·정직)을 내주지 않을지를 정해 두면, 영합과 번아웃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된다.
- 주니어라면 사다리가 걷어차인 현실을 직시하고 우회로를 설계한다. 첫 칸이 막혔다면 오픈소스 기여·실제 산출물·사이드 프로젝트로 “경험 없음” 필터를 넘어설 증거를 만들어라.
마무리
이 글은 답을 주지 않는다. 해결책도, 5단계 프레임워크도 없다. 대신 지금 시장을 통과하는 한 사람의 몸이 어떤 마찰을 느끼는지를 정직하게 보여 준다. AI가 일자리 총량을 얼마나 줄였는지를 따지는 논쟁이 뜨겁지만, 정작 많은 사람이 매일 부딪히는 건 “취업이라는 절차 자체가 적대적으로 변했다”는 더 즉물적인 현실이다. 데이터가 그리지 못하는 그 질감을 증언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도 무엇을 포기하지 않을지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이 짧은 글은 오래 읽힐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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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Jobs and Software is Fucked (On Games And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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