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경제 이론(The Dead Economy Theory): AI가 수요를 죽이고 민주주의의 지렛대를 거두는 시나리오 (Owen McGrann)

Dead Economy — 풍요롭게 자동화돼 돌아가지만 소비자만 사라진 텅 빈 시장 자동화 성채 — 풍요·집중 텅 빈 시장 — 살 사람이 없다
'Dead Internet'을 비튼 'Dead Economy' — 위의 성채는 톱니바퀴가 돌고 황금이 쌓여 풍요롭지만, 아래 좌판엔 살 사람이 한 명도 없다. 풍요롭게 돌아가지만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제.

원문 정보

이 글을 Articles에 담는 맥락: AI 시대 엔지니어/일의 미래를 다룬 위키의 다른 글들이 대개 “개인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에 답한다면, 이 글은 그보다 한 층 위 — AI가 노동을 대체할 때 경제와 민주주의라는 판 자체가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거시적으로 논증한다.

한 줄 요약 (TL;DR)

AI 노동 대체는 기술이 너무 똑똑해져서가 아니라 기업이 분기 실적을 좇는 합리적 인센티브 때문에 일어나고, 그 합리적 선택들이 모여 소비 수요를 파괴하고 부를 (과세하기 어려운) AI 인프라에 집중시킨다. 노동이 경제적으로 불필요해지면 피지배자가 지배자에게 쥐고 있던 지렛대(노동·세수·소비·병역)가 사라지고, 민주주의는 협상력을 잃는다. 저자는 이것을 카뮈–사르트르 논쟁에 빗대 닫는다 —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을 가상의 미래를 위한 비용으로 취급해선 안 된다.”

왜 이 글을 골랐나

이 위키의 Articles에는 AI와 일의 미래를 다룬 글이 많다. AI는 왜 엔지니어를 대체하지 못했나는 “대체했다”는 해고 서사가 대개 워싱이라 봤고, 전문성 재설계는 개인이 검증·암묵지로 살아남는 법을 말했다. 그 글들이 미시(개인·팀) 차원의 적응을 다룬다면, 이 글은 거시(경제·정치) 차원에서 “설령 개인이 잘 적응해도, 그 적응이 모인 결과가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불편한 가능성을 정면으로 다룬다.

특히 이 글의 칼끝은 “기술 결정론에 책임을 떠넘기지 말라”는 데 있다. AI가 일자리를 없애는 게 자연법칙이 아니라 기업의 인센티브 구조가 만든 죄수의 딜레마라는 진단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흔한 체념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비관적이지만 게으른 비관이 아니라 — 경제학·역사·철학을 끌어와 논증을 세운다는 점에서 골랐다. (단, 저자의 결론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아래 “분석과 인사이트”에서 이견도 함께 정리했다.)

한눈에 보기

이 글의 척추는 하나의 인과 순환이다 — 해고가 마진과 주가를 올리고(Turn 1), 그 해고가 소비를 줄여 매출을 깎고(Turn 2), 결국 “내 고객이 곧 남이 해고한 노동자였다”는 수요 붕괴로 돌아온다(Turn 3). 그런데도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죄수의 딜레마 — 비용 절감 이익은 100% 내 것이지만 수요 파괴 비용은 1/N만 부담하기에, 개별의 합리가 집단의 파멸로 달려가며 이 고리에 가속 페달을 밟는다.

flowchart TD
    T1["Turn 1 — 자동화 해고<br/>인건비↓ → 마진↑ → 주가↑<br/>(예: Block 시간외 +25%)"]
    T2["Turn 2 — 대체된 노동자 지출↓<br/>→ 기업 매출↓ → 경쟁사도 AI 도입<br/>→ 경제 전반 수요 수축"]
    T3["Turn 3 — 깨달음<br/>'내 고객이 곧 남이 해고한 노동자였다'<br/>→ 살 사람이 사라져 매출 정체"]
    PD["죄수의 딜레마 (가속 페달)<br/>비용 절감 100% 챙김<br/>수요 파괴는 1/N만 부담<br/>= 개별 합리 → 집단 파멸"]
    DEAD["Dead Economy<br/>수요 붕괴 · 부의 집중(r &gt; g)<br/>노동이라는 민주주의 지렛대 소멸"]

    T1 --> T2 --> T3
    T3 -. "수요는 줄었지만<br/>개별 인센티브는 그대로" .-> T1
    PD -- "멈출 수 없게 가속" --> T1
    T3 --> DEAD

핵심 내용

원문의 흐름을 따라 정리한다. (사실·인용은 원문에 충실하게 옮기고, 내 해석은 다음 섹션에서 분리한다. 일부 통계·인용은 저자가 본문에서 제시한 출처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저자의 논증 안에서 인용한다.)

‘Dead Internet Theory’의 더 나쁜 버전

저자는 인터넷 신규 콘텐츠의 절반 이상이 이미 AI 생성물이라는 ‘Dead Internet Theory’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보다 더 나쁜 시나리오 — 경제 자체가 죽는 ‘Dead Economy’ — 를 제시한다. 핵심 전제는 단순하다. 현재 AI 산업의 천문학적 밸류에이션을 정당화하려면, 대규모로 노동을 대체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

AI 산업의 ‘숫자 문제’

저자에 따르면 AI 투자는 이미 수천억 달러 규모이고, 수조 달러가 예고돼 있다. OpenAI 같은 회사는 수익성 없이도 8천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받는데, 이만한 밸류에이션을 떠받치려면 그에 걸맞게 거대한 시장이 필요하다. 그런데 저자가 보기에 그 정도로 큰 시장은 세상에 단 하나뿐이다 — 전 세계 노동 시장. 결국 AI 산업의 숫자는 대규모로 노동을 대체해야만 정당화된다는 논리다.

그 증거로 저자는 AI 회사들이 스스로 발표하는 벤치마크(GDPVal, AI Productivity Index 등)가 하나같이 전문직 업무를 직접 겨냥한다는 점을 든다. 일부 모델은 인간 전문가를 상대로 80퍼센트가 넘는 승률을 보고하는데, 산업이 자랑하는 지표가 가리키는 방향 자체가 곧 노동 대체라는 것이다.

3턴(Three-Turn) 경제 붕괴 모델

저자는 그 결과를 세 턴으로 모델링한다.

  • Turn 1 — 비용 절감 → 마진 확대 → 주가 상승. 예시로 Block(Jack Dorsey)의 해고 발표가 시간외 거래에서 25% 급등을 부른 일을 든다. 자동화로 인건비를 줄이면 곧장 마진이 오르고 주가가 보상한다.
  • Turn 2 — 대체된 노동자가 지출을 줄인다 → 기업 매출이 감소한다 → 경쟁에서 살아남으려 더 많은 기업이 AI를 도입한다 → 수요가 경제 전반에서 수축한다. 한 회사의 비용 절감이 다른 회사의 매출 감소로 번지는 연쇄.
  • Turn 3 — 기업들이 뒤늦게 깨닫는다: 자기 고객이 사실은 다른 회사가 해고한 노동자였다. 효율은 올랐는데 살 사람이 사라져 매출이 정체된다. 저자가 던지는 질문이 이 턴의 핵심이다.

“Who is the customer when the customer is the thing you’ve eliminated?” (고객이 곧 당신이 없애 버린 바로 그것일 때, 고객은 대체 누구인가?)

죄수의 딜레마 프레임 (Wharton 연구)

그렇다면 왜 멈추지 못하는가. 저자는 Wharton 연구를 인용해 이를 죄수의 딜레마로 설명한다. 자동화하는 개별 기업은 비용 절감의 이익을 100% 자기가 가져가지만, 그로 인한 수요 파괴는 경쟁자가 20곳이면 1/20처럼 일부만 떠안는다. 비용은 시장 전체로 흩어지고 이익만 내 것이니, 각자 합리적으로 계산해도 전체는 집단적 파멸(collective ruin)을 향해 달려간다. 게다가 AI가 좋아질수록 이 동학은 더 격해진다 — 자동화의 유혹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죄수의 딜레마 — 비용 절감 이익은 100% 독차지, 수요 파괴 비용은 1/N만 부담 개별 기업 "자동화할까?" 이익: 비용 절감 100% 내 것 비용: 수요 파괴 1/N 나머지는 경쟁사·사회로 이익 100% > 부담 1/N → 자동화는 개별로 늘 합리적 모두가 그렇게 행동 → 집단 파멸(collective ruin) AI가 좋아질수록 유혹↑ → 동학은 더 격해진다
인센티브의 비대칭이 죄수의 딜레마의 심장이다 — 비용 절감 이익은 100% 내 것이지만, 수요 파괴 비용은 경쟁자 N곳에 흩어져 1/N만 돌아온다. 그래서 개별로는 자동화가 늘 합리적이고, 그 합리들이 모여 집단 파멸로 달려간다.

왜 과거의 자동화는 위안이 못 되나

“과거에도 기술이 일자리를 없앴지만 결국 더 좋아졌다”는 흔한 반론에 저자는 세 가지 차이로 답한다.

  • 시간 척도. 농업 전환은 140년, 산업혁명은 임금이 회복되기까지 70년이 걸렸다. 그 긴 중간기엔 임금 정체와 이윤 급증, 불평등 심화와 사회 격변이 함께 있었다. 그런데 저자는 Bharat Ramamurti를 인용해 이번엔 그 조정 기간이 불과 2년으로 압축될 수 있다고 본다. “장기적으론 모두 더 나아진다”는 위안이 통하지 않는 건, 경제학자들조차 인정하듯 단기의 조정 비용이 누군가에겐 곧 평생(the short run can be a lifetime)이기 때문이다.
  • 범위. 과거 자동화는 특정 과업(직조를 대체한 역직기 등)을 대체했지만, 범용 AI는 인지 노동 전반을 동시에 건드린다.
  • 규모. 여러 산업에서 동시에 일어난다. 저자는 Wassily Leontief의 말(horse) 비유를 든다 — 내연기관 등장 60년 만에 미국의 말 개체수는 88% 줄었다. 일부 과업에서 보완재였던 말이 결국 대체됐듯, 인간 노동도 그럴 수 있다는 경고다.

다만 저자는 반대 방향의 증거도 함께 적는다. Daron Acemoglu(2024 노벨상)는 1987–2017년 자동화의 대체 효과가 생산성 이득을 크게 압도했다고 봤고, 현재 시점에선 자동화가 비용 대비 효율적인 과업이 4.6%에 불과해 향후 10년 생산성 영향이 0.66% 정도로 추정된다고도 적는다 — 즉 위기는 “지금 당장 다 대체된다”가 아니라 인센티브가 그 방향을 가리킨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 거버넌스의 위기

이 글의 정치적 핵심은 여기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추상적 이상이 아니라 물질적 지렛대에 기대어 굴러간다고 본다. 피지배자가 지배자에게 협상력을 갖는 건, 지배자가 꼭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The governed have something the governors need: labor, tax revenue, military service, consumer spending. Remove labor from that equation and watch what happens.” (피지배자는 지배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쥐고 있다 — 노동, 세수, 병역, 소비. 그 방정식에서 노동을 빼 보라, 그러고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노동이 빠지면 세원이 무너지고, 단체교섭은 형해화되며, 소비가 수축한다. 동시에 Piketty의 r > g(자본 수익률이 성장률을 앞섬)가 가속돼, 결국 거의 모든 것이 전환기에 가장 부유했던 자들에게 귀속된다. 저자는 여기에 공공 자금의 역설을 더한다 — 트랜스포머 아키텍처나 DARPA 자금처럼 연구의 위험은 공공이 졌는데 그 보상은 민간이 챙겼다는 것이다.

권위주의의 이점과 정치적 재편

노동의 지렛대가 사라지면 권위주의가 상대적으로 유리해진다고 저자는 본다. 민주 정부는 대체로 인한 선거 후폭풍을 감당해야 하지만, 권위주의 정부는 감시·통제라는 배당 위에 경제 효율까지 얻는다. 사우디아라비아·UAE·싱가포르 같은 곳이 매력적인 고객이 되고, 기술 산업의 인센티브는 점점 자치권 없는 체제(autocracy) 쪽을 가리킨다는 진단이다.

분배 해법은 왜 부족한가 (UBI·재교육의 한계)

저자는 표준적 처방 — UBI, 재교육, ‘여가 경제’ — 이 문제를 단순한 분배 문제로 오인한다고 본다. 그리고 반례를 쌓는다.

  • Anne Case & Angus Deaton의 절망의 죽음(deaths of despair) — 실직과 함께 늘어나는데, 그 메커니즘이 단지 빈곤이 아니라 경제적 목적의 상실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 Guy Standing의 프레카리아트(precariat) — 영구적인 경제 불안정 그 자체가 주는 심리적 손상.
  • Piketty는 UBI가 교육 접근성·저생산성 일자리·부패·역진세 같은 구조적 문제를 비껴간다고 본다.
  • 저자는 Anthropic 자신의 연구도 인용한다 — AI 코딩 에이전트를 쓴 주니어 엔지니어가 속도 이득 없이 이해도만 떨어졌다는 결과.
  • 그리고 미국 유권자들은 UBI 수표보다 일자리 보장을 선호한다는 점.

지적 부정직과 ‘빈약한 철학’

저자는 실리콘밸리의 철학 인용이 하나같이 피상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들은 니체의 위버멘쉬를 “창업자는 윤리에서 면제된다”는 식으로 오독하지만, 정작 니체라면 그런 그들을 경멸했던 마지막 인간(last men)이라 불렀으리라는 것이다. 효과적 이타주의(EA)는 Bernard Williams와 Derek Parfit의 경고를 건너뛴 채 SBF 사태로 걸어 들어갔고, 롱터미즘은 엄밀함이 빠진 Parfit의 재탕으로 가상의 미래를 위해 현재의 고통을 정당화한다. 합리주의 역시 베이즈 인식론을 계시처럼 떠받들며 20세기 과학철학(Kuhn·Lakatos·Feyerabend)을 통째로 무시한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경제적 비문해(illiteracy)도 더한다 — Goldman Sachs는 7% 생산성 효과를 전망했지만 현실의 추정은 0.5–3.5%(McKinsey)에 그치고, 4분의 1조 달러를 투자하고도 기업의 90%가 측정 가능한 효과가 없다고 보고한다는 것.

공적 메시지와 사적 메시지의 모순

저자는 그 대표 사례로 OpenAI의 이중성을 든다. 공개 백서(4월)에서는 주 32시간 노동·증세·공공 부유 기금처럼 진보적인 정책을 제안한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AI 규제와 노동세를 발의한 정치인 Alex Bores를 겨냥해 2백만 달러 이상을 쓰는 슈퍼팩에 자금을 댔고, 투자자 수익을 100배로 제한하던 이익 상한(profit cap)을 슬그머니 제거했다. 저자는 로비스트 Chris Lehane이 AI의 부정적 측면을 드러낸 연구를 억눌렀고, 그 접근을 “이론 물리가 아니라 응용 물리(applied, not theoretical, physics)”라고 프레이밍했다는 대목까지 인용하며 말과 행동의 간극을 짚는다.

카뮈–사르트르 프레임

저자가 글의 도덕적 척추로 삼는 건 카뮈와 사르트르의 분기다. “역사엔 방향이 있고 혁명엔 희생이 필요하다”는 마르크스주의적 논변이나, 궁극의 이익이 현재의 혼란을 정당화한다는 사르트르적 구조는, “우리가 직접 이 혁명을 앞당길지 말지가 유일한 선택”이라는 AI 가속론(Mechanize 창업자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형태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굴라크의 논리 — 기술 결정론을 도덕적 면죄부로 쓰는 것 — 에 빗댄다. 그리고 카뮈의 반론을 들이댄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을 가상의 미래 이익을 위한 허용 가능한 사상자로 취급하는 시스템은, 그 자체로 근본적인 도덕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 전체를 떠받치는 한 줄이 여기서 나온다.

“The person standing in front of you is not an input to a utility function.” (당신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효용 함수의 입력값이 아니다.)

지식의 소멸 메커니즘

자동화가 지우는 건 소비력만이 아니다. 그와 함께 노동자가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이해까지 통째로 사라진다. 저자는 Boeing이 은퇴자를 다시 불러들이고 TSMC가 1년 가까운 지식 격차에 부딪힌 사례를 든다. 80% 역량의 AI라도, 인간이 인지적으로 쥐고 있던 나머지 20%를 함께 제거해 버린다는 것이다. 한번 비워진 그 이해는 필요해졌을 때 손쉽게 다시 채워지지 않는다.

이미 진행된 규제 포획

저자는 AI 투자가 2025년 1–3분기 미국 경제 성장의 39%를 차지했다고 적으며, 연방 정부가 이 붐을 떠받치는 데 이해관계를 갖게 됐다고 본다. 규제자–피규제자가 수렴하고, 전문성 비대칭은 극복하기 어렵고, AI 시스템이 AI 거버넌스를 자문하는 피드백 루프가 닫혀 간다는 진단이다.

알려진 개입책 — 그러나 실행되지 않은

마지막으로 저자는 기술적으론 가능하지만 정치적으론 실현되지 못한 개입들을 나열한다 — AI 인프라에 대한 공적 지분, 강력한 반독점 집행, 자동화 노동에 대한 과세, 그리고 Branko Milanovic이 제안한 자본 소유의 광범한 분산 + 최고 자본 소득에 대한 공격적 과세. 전부 실행 가능하지만, 그것을 발의하는 정치인을 무너뜨리는 데 수백만 달러가 쓰이는 한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저자의 비관이다.

분석과 인사이트

여기서부터는 원문 요약이 아니라 내 관점이다.

  • 이 글의 진짜 기여는 “기술 결정론에서 인센티브 구조로” 책임을 옮긴 것이다. 흔한 AI 종말론은 “모델이 너무 강해져서 어쩔 수 없다”는 능력의 이야기다. 저자는 그 프레임을 거부한다 — 현재 효율적으로 자동화 가능한 과업이 4.6%뿐이라는 통계까지 인용하면서도 위기를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문제는 AI의 똑똑함이 아니라 “충분히 쓸 만하면서 싼” 자동화를 분기 실적이 강제한다는 것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이 논증의 심장이다: 개별 합리성이 집단 파멸을 낳는 구조에선, “각자 알아서 잘하면 된다”는 처방이 작동하지 않는다.

  • 이 글은 우리 위키의 미시 서사들에 대한 거시적 반례로 읽힌다. 전문성 재설계노동시장에서 살아남기는 “개인이 검증 능력·암묵지·포지셔닝으로 살아남으라”고 말한다. 옳은 처방이다. 하지만 이 글은 합성의 오류(fallacy of composition)를 찌른다 — 모두가 잘 적응해도, 그 적응이 수요를 떠받치던 임금을 같이 없애면 시장 자체가 줄어든다. 두 관점은 모순이 아니라 층위가 다르다. 개인은 여전히 적응해야 하지만, “내가 적응하면 끝”이라는 안도는 시스템 차원에선 보장되지 않는다.

  • 이 글은 AI 워싱 해고 서사와 정면으로 긴장한다 — 그리고 그 긴장이 흥미롭다. 그 글은 “AI가 해고했다”는 서사 대부분이 워싱이고 실제 대체는 과장됐다고 봤다. 이 글의 “지식 소멸 → 은퇴자 재고용”(Boeing) 사례는 그 진단을 보강한다(섣부른 해고는 되돌려진다). 하지만 동시에 이 글은 “워싱이든 아니든, 주가가 해고에 25% 보상하는 인센티브 자체가 동력”이라고 본다 — 즉 실제 대체 여부와 무관하게 해고를 부추기는 시장 신호가 문제다. 두 글을 겹쳐 읽으면 “대체는 과장됐지만 대체하려는 인센티브는 진짜”라는, 더 정교한 그림이 나온다.

  • ‘r > g’와 과세 불가능성의 결합이 가장 날카로운 통찰이다. 부가 노동(과세하기 쉬움)에서 자동화 인프라(과세하기 어려움)로 옮겨가면, 재분배의 손잡이가 손에서 빠져나간다. UBI 비판이 설득력 있는 이유도 여기다 — UBI는 재원(누구에게 무엇으로 과세할 것인가)을 전제하는데, 그 재원이 구조적으로 빠져나가는 중이라면 UBI는 출발선에서부터 흔들린다. 저자가 분배 해법을 일축한 건 “나눠 줄 필요 없다”가 아니라 “나눠 줄 손잡이가 사라진다“는 더 무서운 주장이다.

  • 다만 이 글은 논증이지 예측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저자도 Acemoglu·McKinsey를 인용하며 현재의 생산성 효과가 미미함을 인정한다. 즉 “Dead Economy”는 확정된 미래가 아니라 인센티브가 가리키는 방향이다. 글의 비관은 강력하지만, 같은 인센티브 분석은 반대 방향으로도 작동할 수 있다 — 수요 붕괴가 기업에 손해라면(Turn 3), 기업·국가에는 수요를 지킬 인센티브도 생긴다(저자의 OpenAI 백서 인용이 역설적으로 이를 보여 준다). 저자는 그 가능성을 “공적 메시지와 사적 행동의 모순”으로 일축하지만, 나는 그 모순이 아직 결판나지 않은 줄다리기의 증거라고 본다. 죄수의 딜레마는 반복 게임(iterated game)이 되면 협력 균형도 가능하다 — 저자가 덜 다룬 출구다.

  • ‘80% AI가 나머지 20%를 지운다’는 지식 소멸 논리는 실무자에게 가장 직접적이다. 이는 전문성 재설계인지부채·의도부채와 정확히 같은 메커니즘을 경제 전체 규모로 확대한 것이다 — 개인·팀 차원의 “이해의 소멸”이, 거시 차원에선 “산업 전체의 암묵지 소멸”이 된다. 우리가 팀에서 본 패턴이 사회 규모로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로 읽으면, 개인 처방(“암묵지를 박제하라”)의 사회적 버전(지식의 공적 보존)이 왜 필요한지가 보인다.

적용 포인트

이 글은 거시 담론이라 “오늘 당장 코드에 적용”할 항목은 적다. 대신 사고의 프레임으로 가져갈 것들이다.

  • “AI가 어쩔 수 없이 한다”는 표현을 들으면 “누구의 어떤 인센티브가 그렇게 만드나”로 되물어라. 기술 결정론은 종종 책임 회피의 수사다. 의사결정의 주체와 보상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 분석의 시작이다.
  • 자동화 ROI를 볼 때 ‘합성의 오류’를 의식하라. 우리 팀/회사의 비용 절감이 합리적이어도, 그것이 모이면 우리 고객의 구매력을 깎을 수 있다(Turn 2→3). 특히 B2B에서 “내 고객이 다른 회사가 줄인 인력”인지 점검할 가치가 있다.
  • 재분배·사회 정책 논의에서 “재원의 과세 가능성”을 먼저 보라. UBI 같은 처방의 실현 가능성은 분배 의지가 아니라 무엇에 과세할 수 있는가(노동 vs. 과세 어려운 자본·인프라)에 달려 있다.
  • 개인 차원에선 여전히 검증 능력·암묵지·포지셔닝으로 적응하라 — 단, 그것을 ‘시스템이 괜찮다’는 보증으로 착각하지 마라. 미시 적응과 거시 위험은 별개 층위다.
  • ‘지식의 공적 보존’을 한 단계 위 과제로 인식하라. 팀에서 암묵지를 박제하듯(grill-with-docs류), 조직·산업 차원에서도 사람만이 쥔 20%의 이해가 통째로 사라지지 않게 문서화·승계 체계를 둘 가치가 있다.

마무리

“The Dead Economy Theory”의 메시지는 AI가 너무 똑똑해서 우리가 진다가 아니다. 정반대다 — 충분히 쓸 만한, 싸구려 자동화가 분기 실적을 좇는 기업들에 의해 배치되면서, 소비 수요를 죽이고 부를 과세하기 어려운 곳에 모은다는 것. 그 동력은 기술의 능력이 아니라 죄수의 딜레마라는 인센티브 구조이고, 그 구조가 노동이라는 민주주의의 지렛대를 거둬 버린다. 저자의 결론은 비관적이지만, 그 비관의 진짜 표적은 체념이다 — “어쩔 수 없다”는 말이야말로 이 글이 가장 경계하는 면죄부다. 동의하든 이견을 갖든,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은 효용 함수의 입력값이 아니다”라는 카뮈의 한 줄은, AI 시대의 모든 ROI 계산 옆에 놓아 볼 만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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